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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hho26論壇乞丐
2007-8-13 02:27#81
幾好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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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bhho26論壇乞丐
2007-8-13 02:29#82
幾好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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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gyiuchung三星高級會員
2007-8-19 10:57#83
抄嫁face_l_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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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005二星初級會員
2007-8-19 15:42#84
原帖由 yungyiuchung 於 2007-8-19 10:57 AM 發表
抄嫁face_l_18:
我抄!?部份是轉自維基,再加以修改為刪剪,補充.部份則是我本人所打,有一少部份是轉自其他網頁.合共用了我十多個小時.(這只是保守估計,應該用了更多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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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89231三星高級會員
2007-8-22 19:53#85
郭候好似神雕俠侶有個人係呢個名
可能抄神雕的
睇下幫唔幫到你-.-:ro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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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何聰卍三星高級會員
2007-8-30 14:40#86
- -有d怪~:ro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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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005二星初級會員
2007-8-31 23:57#87
原帖由 卍何聰卍 於 2007-8-30 02:40 PM 發表
- -有d怪~:ro08:
請提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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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1990三星高級會員
2007-9-1 21:38#88
版主可唔可以del左stbhho26d貼,,
好左位==""
我都知3國部份歷史,,
諸葛亮佢係最後個場雖然死左,,
但係死之前蜀軍係俾人包圍著,,佢諗左條計令到蜀全軍都完全退兵,,
條計叫咩名就唔記得,,
我記得就係叫人係佢死左之後將屍體放係棺才同埋將佢推返蜀國
而且全軍跟係個棺後面,,
司馬懿,,定唔知佢個仔,,就恐防有乍,,唔敢阻攔同追擊
最後全軍安全撤退,,而都係佢最後同好出名既計謀之一
記得唔係幾清楚希望冇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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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y123456一星新手會員
2007-10-25 22:11#89
超感謝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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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005二星初級會員
2007-11-3 11:44#90
原帖由 walter1990 於 2007-9-1 09:38 PM 發表
版主可唔可以del左stbhho26d貼,,
好左位==""
我都知3國部份歷史,,
諸葛亮佢係最後個場雖然死左,,
但係死之前蜀軍係俾人包圍著,,佢諗左條計令到蜀全軍都完全退兵,,
條計叫咩名就唔記得,,
我記得就係叫人係 ...
這是三國演義的[死諸葛嚇跑活仲達],雖確有其事,但並不是諸葛亮的遺計,乃司馬懿心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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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梨二星初級會員
2007-11-4 14:47#91
咁都有@@
慢慢睇先:smilie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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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ngtatc一星新手會員
2007-11-4 19:32#92
好好呀!!好完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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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kit1993五星白金會員
2007-12-9 07:42#93
資料好像有點出錯....:ro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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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alex102一星新手會員
2007-12-15 01:11#94
多謝謝謝謝謝多謝謝謝謝謝多謝謝謝謝謝多謝謝謝謝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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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005二星初級會員
2007-12-22 16:36#95
原帖由 saikit1993 於 2007-12-9 07:42 AM 發表
資料好像有點出錯....:ro10:
請問哪裡出錯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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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owen8二星初級會員
2007-12-25 19:21#96
李寧死得好慘,頂左十幾日,冇晒補給,死左:ro10: :ro10: 點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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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07545721678一星新手會員
2007-12-26 14:31#97
cccccccc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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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HP一星新手會員
2007-12-27 22:15#98
有d名可能係地名轉出黎
好似趙士林咁
士林係台北一個景點...可能就咁加個姓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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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210一星新手會員
2008-1-15 11:41#99
o~thx,謝謝你的分享:ro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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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阿浩一星新手會員
2008-3-26 14:35#100
호국보훈의 달 기념, 임진왜란 행주대첩의 명장
권율(權慄, 1537∼1599 / 중종32∼선조32)
1999년, 올해는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이 서거한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문화관광부는 임진왜란 때 도원수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장공(忠莊公) 권율(權慄)장군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두려워할 "률(慄)", 타고난 이름과 호연지기'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시며, 명장(名將)으로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본관은 안동이시다. 조선 중종 32년 강화도에서 태어나신 장군의 이름이 '두려워할 률(慄)'자 인 것은 어쩌면 후일, 왜놈들을 공포에 벌벌 떨게 하라는 부친의 예언적 작명(作名)인가 보다.
젊어서는 아버지 권철이 영의정에 오를 만큼 권문세가였건만 권율은 학문을 멀리 하지 않으면서도 중년이 되도록 과거를 보지 않고 전국 명산을 순례하며 지리를 익히고 호연지기를 길렀다. 금강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던 권율은 46세 늦게서야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과거를 봐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위인 이항복보다 늦어서 당시 화제가 되었다 한다.
'임진왜란과 행주치마의 행주대첩'
그로부터 10년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목사인 권율은 전략 요충지인 광주로 발령을 받아 곽영(郭嶸)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용인(龍仁)에서 일본군과 싸워 대패하였다. 패전을 충격을 딛고 장군은 다시 광주로 돌아와 군사를 모아 훈련을 시켰으며 이치(梨峙)에서 전주로 들어오려던 왜군을 격퇴시켜 호남을 보존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치대첩은 임진왜란의 4대첩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치대첩의 전공으로 전라도 순찰사로 승진한 장군은 다시 군대를 이끌고 북진해 수원의 독성(禿城)에서 왜군을 물리쳤으며 이듬해 2월 지금의 고양시 한강변의 행주산성에서 2천 여명의 군사로 왜군 3만 명의 공격을 막아낸 행주대첩 등 수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셨다. 행주 대첩 당시에는 고양의 부녀자들도 전투에 참여해 덧 치마폭에다 돌을 날라 석전(石戰)을 전개했는데, 오늘날 행주치마가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행주산성에는 권율 장군 동상과 그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장사, 대첩비 등이 남아 있다. 행주대첩의 전황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상세히 전하고 있다.
1597년 도요토미가 죽자 일본군은 슬그머니 물러갔으며, 이로써 긴 전쟁은 끝났다. 전후 민심을 수습하던 도원수 권율 장군도 병을 얻어 벼슬을 내놓았으며 1599년 7월,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군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을 때가 56세, 당시 이순신 장군은 47세, 곽재우 장군은 41세였다. 나라를 지킴에 나이를 돌보지 않으셨던 장군이셨다.
'장군을 추모합니다.'
권율 장군을 추모하는 행사로는 행주문화재(6월4∼6일 고양시)와 권율장군 학술회의(6월18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소강당)를 비롯해 ‘권율서거 4백주년’ 기념사업이 올 한해 다양하게 펼쳐진다. 특히 행주대첩의 무대가 된 고양시는 연중 행사를 계획 중이어서 올 한해는 충장공의 해가 될 전망이다. 권 장군이 서거한 8월 26일부터는 각종 추모행사가 줄을 잇는다. 행주서원에서 열리는 추모제를 필두로, 추모의 밤 국극 공연, 청소년 백일장 등이 계획돼 있다.
다큐채널 CTN(Ch29)이 6월 12일(토요일) 오후 8시 `이 달의 문화인물'로 권율장군을 다큐멘터리로 방송한다. 7월에는 맹사성, 8월에는 황현, 9월에는 김시습 등이 월별 시리즈로 방송(첫째주 금 오후8시)될 예정이다.